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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율과 선율의 뇌 반응 유사, 뇌과학으로도 확인
시인 정지용. 한겨레 자료사진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어오리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소근거리는구나
모처럼만에 날아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어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실거리나니
나는 갈매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하략)”
-정지용의 시 ‘오월 소식’ 중에서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의 끝무렵 우연하게 접한 정지용의 ‘오월 소식’을 가만가만 읽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 안에서 가벼운 몸짓으로 춤추는 말 소리의 화사한 움직임들을 느끼게 됩니다. 역시 시와 음악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오월 소식’에 이어 정지용의 대표 시 ‘향수’를 읽다보면 시와 음악을 구분하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우리나라 고전문학 시가들이 지금은 비록 널리 읊어지고 있진 않지만, 그 운율인 삼사조나 사사조가 4비트 8비트 음악으로 녹아들어 여전히 꾸준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운율이나 리듬, 선율을 느낄 수 없는 시들도 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어떠한 규칙적인 리듬이나 선율이 없이 그저 우연적 소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우연성의 음악’처럼 무리듬 무선율의 시들 속에서도 우연한 음악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이러한 시와 음악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오래전 부터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선율과 리듬이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음악은 언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 이래, 시와 음악이 서로 닮은 체계라는 ‘시-음악 상동설’, 시는 의미의 체계이고 음악은 소리의 추상적 체계라고 하는 ‘시-음악 상이설’, 시와 음악은 서로 다른 체계이지만 서로 보완될 수 있다는 ‘시-음악 변증법적 관계설’이 시대에 따라 부각되었다가 잦아들었다가 하고 있는 것이죠.
근래에는 뇌과학을 통해 시와 음악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 엑스터대학교 의대의 인지신경학자 애덤 지먼 교수는 ‘의식연구’ 저널 (the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에 게재한 글에서 시와 같이 감정이 부여된 글을 읽는 사람들의 뇌 반응이,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 사람들의 뇌 반응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지먼 교수 연구진은 엑스터대학교 박사후 과정 학생 10명과 대학원생 2명 등 13명의 오른손잡이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우선 19~20세기 소설에서부터 실용문에 이르기까지 좋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기본적인 16개의 짧은 산문 구절들과 쉽거나 어려운 16개의 소네트(14행 1연으로 이루어진 서정시), 그리고 자원자들이 스스로 고른 8개의 시를 준비해 뒀습니다. 40개의 구절들을 8묶음으로 나눈 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속에서 자원자 1명당 5번씩 무작위로 보여지는 구절들을 읽게 했는데, 자원자가 방금 읽은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다음 구절을 보여주기 전에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실험방식을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떤 구절을 읽더라도 읽기와 관련된 뇌 부위는 활성화되었지만, 연구진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구절들을 읽었을 때에는, 음악을 듣고 척추에 전율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고 하는 뇌의 오른쪽 부위들이 비슷하게 반응을 했다는 것이죠.
또 연구진이 선택한 시 구절들은 성찰과 관련된 뇌 부위 ‘중앙 측두엽’을, 자원자들이 스스로 고른 시 구절들은 기억과 관련된 뇌 부위 ‘후대상피질’을 활성화 시켰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읽을 때의 뇌는 측두-두정엽, 후두-두정엽과 브로카 영역, 전두엽이 관여한데 반해, 시 구절들을 읽었을 경우에는 이 부분들에 더해 인간의식과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후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과 서술적 기억과 장기기억의 저장과 관련된 중앙 측두엽 (medial temporal lobe)이 더 활성화되었다는 것입니다.한마디로 사람들의 뇌는 시와 산문을 읽을 때 각각 다르게 반응하며, 감정이 부여된 시를 읽으면 음악을 듣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결과인 것이죠. 이와 같은 지먼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연구대상이 13명에 불과하다는 점 등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문학과 예술과 과학의 관계를 융합적으로 살펴보려고 한 시도라는 점에서, “모든 종교와 예술과 과학의 뿌리는 하나다. 이 모든 열망들은 인간의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데 방향 맞춰져 있다. 단순한 물질적 존재의 영역으로부터 끌어올려 개개인들이 자유를 향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고귀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사실 시와 음악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연구는 누가 보더라도 당장으로서는 전혀 돈이 안 되는 연구입니다. 그렇게 돈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먼 교수팀이 이렇게 ‘순수’한 지적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역시 아인슈타인이 말한 ‘열망’이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일까요? 그 ‘열망’이 시키는 명령에 부응하여, 아래와 같은 시에 노래를 붙인 가곡을 듣는 사람들이 그 시가 서정시냐 초현실주의 시냐 하는 장르에 따라 뇌 반응을 달리 하는지 알아보려 나선다면 그것은 과연 지나친 지적 사치의 발로일 뿐인 것인지 다시 한번 궁금해집니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내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것입니다홀로 외로이그리고 모든 즐거움을 떠나서나는 높은 하늘 저쪽을 바라다 봅니다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이는 먼 곳에 있네눈앞이 어지럽습니다, 애간장이 타들어갑니다,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내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것입니다”-독일 작곡가 슈베르트, 슈만, 볼프가 가곡으로 만든 괴테의 시 ‘미뇽의 노래’ 중에서“내 불쌍한 심장은 한 마리 올빼미사람들이 못을 박고 빼고 또 못을 박네피, 열정, 올빼미는 한계점에 이르네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나는 그들을 고용하네”-프랑스의 작곡가 루이 뒤레가 곡을 붙인 아폴리네르의 초현실주의 시 ‘올빼미’
녹색 부분이 뇌의 후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녹색 부분이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이고 중앙 측두엽 (medial temporal lobe)은 그 측두엽의 가운데 부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슈베르트. 한겨레 자료사진.
독일의 테너가수 프리츠 분덜리히가 부른 ‘시인의 사랑’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ZLjf_m6j0A
“아름다운 5월에,
나의 눈물에서 피어나는 것은,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
나 그대의 눈을 바라보면,
내 영혼을 담고 싶네(하략)”
-독일 작곡가 슈만이 하이네의 시 ‘노래의 책’에서 16편의 시를 가사로 뽑아 작곡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에서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24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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