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도산 안창호 글짓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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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욱, 안창호, 김구, 이광수 외 지음, 『안창호 평전』, 청포도 출판사
현대적 지사의 本
― 《안창호 평전》을 읽고 ―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이 있다. 나를 먼저 수양해야 세상의 사람을 이끈다는 뜻으로, 이 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어 현대에까지 본보기가 되어주는 민족운동가가 있다. 그는 바로 도산 안창호 ― 이른바 ‘현대적 지사’의 길을 제시해준 인물이다.
대화하고 싶은 사람
도산은 어린 시절부터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온전히 ‘대화’할 줄 아는 이였다. 그는 밀러 등의 외국인 은사들과도 타국의 침략에 대하여 깊이 이야기하는 등 정의(正義)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로써 일찍이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 설치는 것은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라고 생각한 도산은, 근대 민주주의 시초의 장(場)인 만민공동회에서 진정한 독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독특한 ‘대화적 연설’로써 설파하는 등 민족운동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냈다.
기실 만민공동회가 독립협회에서 기인하였고, 그러한 독립협회가 당시 황제였던 고종이 봉건 체제의 붕괴를 염려해 황국협회에 의해 해산되도록 지시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매우 선구적인 연설 기회였다. 그러한데 그 수많은 연설가들 중에서도 유독 도산의 연설이 역사에 뜻 깊게 남은 연유란 무엇일까? 바로 그가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언행일치의 대화’를 잇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해 보여주었고, 이를 지켜본 청년들의 가슴에 의지의 불을 지핀 까닭일 터다.
이러한 그의 ‘대화적 연설’은 필히 신민회와 같은 비밀 결사 단체가 크게 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사료된다. 결사, 그것도 일제의 감시와 이간질을 빗겨가 내부 조직을 견고히 하는 ‘비밀 결사’를 위해서는 대화의 자세가 필수적일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죽거나, 죽이지 않고 사는 법: 실력양성론
주지하다시피 도산은 실력양성론을 다진 민족운동가였다. 그의 실력양성론이란 우리 민족 스스로 힘을 키워 요컨대 자립 · 자족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의 길임을 적시한 사상이다. 이 같은 사상에 근거해 도산은 ‘진실한 교육’이 결여된 당시의 한국에 대성 · 오산학교를 설립하는 주요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그는 ‘건전한 인격을 지닌 애국심 있는 국민의 양성’이야말로 민족운동의 기초 중 기초라고 본 것이다.
당대 일본을 포함한 비열한 자들의 특유한 성격으로서의 거짓, 요는 ‘겉으로 하는 척이나 하고 마음에는 다른 속셈을 지녀 행동하는 양상’을 마땅히 문제시 여긴 도산은 그러한 성격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를 갈고 닦는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미리 깨우쳤다. 그리하여 그는 ‘실력양성론’을 정교화해 동포에 나누었던 바다.
따라서 도산의 학교교육 방침은 ‘건전한 인격을 가진 애국심 있는 국민의 양성’에 있었다. 거짓이 없고, 속이는 행실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없어 독립이라는 순수한 정의의 길을 윤리적으로 자연히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다만 강제 주입하는 폭력적 교육이 아닌, 성찰하여 학생이 깨닫도록 하는 지극히 평화적이고도 철학적인 교육 방침으로 보인다.
이처럼 민족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그의 윤리적 운동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청년기 미주로 유학했던 때부터 그는 엘리트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타국에서 각자도생하며 어렵게 삶을 이어가는 우리 동포들의 모습을 그저 보아 넘기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지속 · 발전한 흥사단을 통해 동포들을 위해 세심히 민족운동을 하였다. 도산은 흥사단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운동 기구의 모습을 조직적으로 지니게 하였는데, 이로써 국내외를 망라한 자주 독립운동의 길이 탄탄히 마련해 귀감이 돼주었다.
‘현대적 민주주의’를 통찰하다
그러나 그의 독립운동은 실제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현대의 한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다 못해 남한에서는 서울중심주의 또는 지방 격차와 연고주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듯, 당시에도 서북 지역과 기호 지역 사이의 파벌 문제가 독립운동 단체 내 · 외부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북 출신인 도산은 서북을 넘어 한국의 특출한 인재로서 타 지역 출신 동지들의 견제를 수도 없이 받아왔으나 그러한 암투에도 꿋꿋이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훌륭한 극기(克己)의 면모를 보였다.
애초 그는 민족운동을 윤리적 운동이지 결코 정치운동이 아님을 직시하였다. 민족운동 자체가 일제의 억압 아래 있으므로 그러한 가운데에도 분열 없이 결사를 다지려면 동지들끼리는 정치성에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되, 신의를 갖추는 윤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게 도산의 지론이다.
분명 일제의 폭력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온전히 정착되지 못하였던 당시, 도산이 이러한 사상을 설파하며 다양한 동지들을 규합해 중재하였다는 점은 현대에도 널리 본보기가 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동아시아 내 가장 진전한 민주주의 제도를 지녔다고 평가되는 현재의 우리네 정치판, 나아가 세계경제위기로 도덕을 경시하는 세계화 시대의 여러 국가 단위에서조차 그처럼 ‘분열 없이 신의를 갖춘 윤리운동’을 흔들림 없이 명시적 · 계속적으로 펼치는 이는 기실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일생으로
더욱이 놀라운 점은 그의 이 ‘신의를 갖춘 윤리운동’이 면밀히 보아 일상에서 일생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연속적인 형태였다는 것이다. ― 이에 관련해, 특기할 만한 도산의 일화가 있다.
‘대화적 연설’ 외에도 평소 소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줄 알던 도산은 소년들과의 사적 약속 또한 어른들의 공적 약속에 다름없이 귀중히 여겨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소년단의 한 소년이 행사에 자금이 필요하여 도산에게 도와달라고 거리낌 없이 요청할 정도였으니, 그때에 도산은 가진 돈이 없어 날짜를 정해 그날 자금을 주도록 기약했다.
그런데 이즈음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즉, 그에 국제적 이목을 받아 한국에 원한을 가진 일본 경찰은 잠복하여 한국의 독립지사들을 음습하게도 잡아들였다. 허나 그러한 시국에도 불구하고 도산은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기일을 미루지 않은 채 담담히 소년의 집으로 향했고, 잠복한 일본 경찰에 붙들려 약 4년의 옥고에 처하게 됐다. 이는 약속을 습관과 같이 지켜 신의를 잃지 않으려 끝까지 노력하는 도산의 성정에 관한 단적인 예일 테다.
한편 도산의 ‘일상에서 일생으로’ 연속하는 신의의 삶을 지키는 데엔 이행 못할 약속은 함부로 하지 않는 진솔하고도 신중한 성정과도 함께 했다고 보인다. 이는 특히 그가 대성 · 오산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라고 항시 준법과 신뢰의 정신을 타이르면서도 교내에 까다로운 규칙은 결코 내세우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도산의 행적은 그야말로 학생들에게 ‘진심을 통한 진실 추구’의 습관을 본보기 삼아 따르도록 할 만했으리라 판단된다. 그는 타고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진심을 통한 진실 추구: 도산의 ‘한국적 똘레랑스’
나아가 도산은 ‘실력양성론’의 전개에 연관해서도 일생에 관용을 다했다. 그는 급진론에 대하여 신중히 재고하기를 일관했던 바, 예컨대 급진론자들이 일본을 포함한 외국의 힘을 잠시간 빌려 정치적 반대 측의 수구파를 한 번에 소탕해 근대 선진국을 이루자며 도산에게 그 중심인물이 되길 바라고 요청하였음에도, 도산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이는 실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상태로 하는 거사란 실패 확률이 높음을 지적한 동시에 우리 민족끼리의 신뢰를 공고히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해 문제해결을 한다는 것이 다만 ‘진짜 적’에게 책 잡혀 역이용당하는 길임을 적시하였던 맥락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타인 또는 타 집단과의 관계에서 실리와 신의, 사상 등의 문제로 언제고 갈등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인격체로서의 개별성과 보편성이라는 동시적 모순을 지니는 사람 그 자체의 고유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되는 본성의 지혜로운 공존을 꾀하지 못하고 다만 개별성에 치우쳐 보편성과 윤리를 저버려 성급히 급진론에 매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반대파를 몰아내려는 욕망은 곧 대화를 통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는 폭력에 이르기 쉬운 연유이다.
실제 도산의 우려대로 한국이 일제의 식민 수탈지가 된 뼈아픈 역사의 저변에는 독립협회의 주요 인물이었던 이완용 등이 급진론의 달콤한 유혹에 연루해 일본이라는 ‘진짜 적’의 수하로 들어가 의존한 결과였다. 이는 어느새 한국의 정치적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인지, 광복 후에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상적 대립에 대하여 급진적으로 몰두하였던 이들이 결국 소련과 미국의 손을 잡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 결과 현재까지도 남과 북이 갈라진 한국은 슬픈 대지의 현실을 안고 살게 되었다.
이처럼 급진론은 인간 본성에 기댄 분열로의 지름길이었다. 도산은 이를 알아 동지들 간 신의를 다지고자 ‘믿을 사람’, ‘애국 헌신할 결의 있는 사람’, ‘단결의 신의에 복종할 사람’ 등의 원칙을 세워 비밀 결사의 신민회를 건설하고 임시정부 활동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그러한 사상은 당대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사실상 제도가 발전한 현대에조차 급진론에 의한 분열과 인신공격의 난무는 여전하니, 일제강점기였던 당시에 도산의 끊임없는 인내와 그에 따른 실력양성론의 전개는 그야말로 역사에 깊이 각인돼야 할 ‘진심을 통한 진실 추구’의 자세, 요는 ‘지사로서의 헌신’이 아닌가 싶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대가 ― 도산 안창호의 역사
허나 이러한 도산에게도 어찌하지 못할 사적(私的) 죄책감은 있었다. 바로 여느 운동가들과 다름없이 민족운동에 투신한 데 따른 가족과의 오랜 이별로, 이는 “내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치마 하나, 저고리 한 감 사준 일이 없었고, 아들 필립에게도 공책 한권, 연필 한 자루 못 사주었다. … (중략) … 여간 죄스럽지가 않다.”라는 그의 공식석상에서의 언행에서도 익히 드러난 어쩌면 유일무이한 약점이라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도산은 이를 부끄러이 여기고 숨기려 하기보다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전했다. 그 결과 도산의 가족은 미주를 개척해 지아비의 뜻에 감화해 민족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평화로운 가정 만들기에 합심하였던 것이다.
본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민족적 · 거시적 거사 외에도 평상시 가까운 가족과 소년소녀들과의 일상적 관계에 또한 거짓 없이, 전심으로 다가서는 도산의 일관된 모습에서 현대의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헌신적 사랑으로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느낀다. 그러나 이 같은 지행합일의 모습은 단순한 기계적 훈련의 차원이 아닌, 도산이 항시 자기 자신을 통찰하며 진일보하고자 노력하는 데서 드러난 안창호라는 사람 ‘개인의 진실된 역사’ 면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대사회는 세계화 · 정보화 시대라는 이유로 왜곡과 거짓, 폭력과 외면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지친 사람들은 어느새 같은 대지를 밟고 살아가는 민족이어도 타인이라는 이유로 진실 혹은 진심을 기대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러한 삶의 자세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야말로 자타(自他)에의 ‘사랑이 전무한 시대’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도산 안창호라는 한 사람의 역사는 그야말로 ‘현대적 지사’의 근본이란 무엇인가 깨닫게 하는 귀중한 우리역사가 된다. 지사(志士)는 그 자신을 갈고 닦아 타인의 본보기가 돼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기에, 수직적 · 수평적 관계 모두에 정직하고자 언제고 충실하였던 도산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틀림없는 귀감이 돼주는 까닭이다.
하여 도산은 말했었다. “사랑, 이것이 인생에서 밟아 나갈 최고의 진리요. 가정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사랑을 믿고 사랑을 품고 사랑을 행하는 그 사람 자신의 마음은 비상한 화평 속에 있으므로 남이 헤아리지 못할 무한한 행복을 받을 것이오.”
― 작금, 사랑에 목마르나 어느새 삶과 사회에 지쳐버린 자가 있다면, 그에게 시공을 초월한 ‘현대적 지사’ 도산의 ‘존재 배움’은 곧 잊었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하는 기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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