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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해양문학상 응모작1: <꿈에>

꿈에 용왕이 묻는다. ‘이 바다의 끝에 바다가 있겠는가? 육지가 있겠는가?’ 알든, 모르든 그저 거북은 답한다 ‘저는 제가 있어야 할 곳곳으로 다닙니다.’ 용왕은 말한다. ‘오호라, 너야말로 바다의 왕이노라!’ ‘느린 제가 왕이면, 다들 왕이게요?’ ‘곶곶이라며?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고자 하는 네 의지가 기특하다.’ ― 꿈에서 깨어나니, 오랜만에 마음이 푸르렀다 거북이처럼 느린 인생, 나쁘지 않구나 하고

창작 2023.12.20

[Poem Scrap] 이지엽, <역설>

역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늘 본래의 뜻을 배반하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꽃을 피우지 향과 색, 다른 꽃이어서 A는 B 못 박을 수 없지 A가 B에 도달하는 순간 B와 몸을 섞어 B도 아니고 A도 아닌 섬이 되는 게지 붙박이 외로운 그림자, 마른 바람 되는 게지 그러니 완전한 A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든지 또 A는 무연히 존재하는 법 자신을 다 안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인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도 잘 알려진 나와 알지 못할 무수한 나의 집합 울다가 갑자기 웃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지 ㅡ 이지엽, 《사각형에 대하여》 중

책 - 발췌 2023.12.20

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응모작2: <까마귀 이야기>

까마귀 이야기 까치는 가족 있는데 까마귀 혼자 다닌대 까악, 까악 우는 소리 시끄럽다고 다들 피한대 가족 지키는 까치는 자기도 까마면서 까마귀 피해 고개 돌려 까악, 까악 까악, 까악 다치지 않아도 아픈 까마귀 너의 가족은 친구는 다들 어디 있니? 다치지 않아도 아픈 까마귀 속도 정말 까말까 까마귀 아프지 않았을 때 그 이야기 궁금해

창작 2023.12.19

소설집 리뷰: '도시 그늘' 아래 우회적 마비 그리기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

‘도시 그늘’ 아래 우회적 마비 그리기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 이제까지 편혜영에 관한 비평론은 주로 ‘그로테스크 미학’이나, 허무라는 핵심어로 요약되어왔다. 또한 이처럼 요약되는 핵심어의 맥락을 일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 즉 세계 자체의 “섬뜩함”을 바라보는 작가의 ‘현실적’ 시선에 주목하여 접근 ․ 정립하는 경향도 있다.1) 요컨대 기존 비평은 창작자 편혜영의 생산물로서 작품을 현실주의라는 이념형으로 포괄해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본 글은 이러한 편혜영론에서 한 발자국, 조금 더 내딛어 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넓혀보고자 시도하는 글이다. 현대의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 역시 개성에 따라 단일한 성격 내지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의 창작자인데, 필자는 그러한 문학적 표현의 단일성이 내재한 보..

창작 2023.12.17

제5회 등대문학상 작품 공모전 응모작3 - <소금빛 파수꾼>

소금빛 파수꾼 찬찬히 가까와지는 바다 위 하얀 거품 날 기표로 보아 천진히 드러내 오네 나그네들 나를 보고 내 선 이곳 상상하니 안내 바래마지 않아 나의 빛길 순수히 기뻐하다 파란 향수 갈라 오면 풍요한 추억 자연 나누니 그 누가 반갑지 않으려나 그저 만나 기쁜 순간 고요한 파도 시간 위해 오늘도 소금빛 흘리어 보내다 쉼을 바라는 자여 여느 때든 이곳에 와 그리운 평화로 포옹해보세 울산항만공사: https://www.upa.or.kr/main.do

창작 2023.12.16

제5회 등대문학상 작품 공모전 응모작2 - <파도 위 발자국>

파도 위 발자국 아빠는 낚지 않는 낚시를 좋아한다 아― 금방도 놓치었다 그런데도 웃으며 재밌다 하는 건 저어기 저 장난감 방파제 빛나서일까 파도에 낚싯대 춤추며 즐거운 아빠 저 대신 바다를 걷는다 익살맞다 나도 같이 잦은 물결에 낚싯대, 발자국 내본다 아빠는 낚지 않는 낚시를 좋아한다 모처럼 낚은 물고기도 작은 녀석은 뭣 하러, 대체 뭣 하러 잡힌 거냐? 반문하며 훠이 저리 보낸 게 이젠 몇이더라 아빠가 바다에 낳은 물고기들은 사라라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나와 아빠 발자국과 함께 짠 냄새 남긴 채 어디 가버렸는데 그래도 아빠는 낚지 않는 낚시를 좋아한다 낚싯대 발자국 남기자, 우리 아가 다 큰 나를 그렇게 부르며 계속해 멈춘 시간 보내자 한다 울산항만공사: https://www.upa.or.kr/main..

창작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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